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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1907년 7월[헤이그 말사사건]을 빌미로 한국의 초대통감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정미조약(丁未條約)을 강요하며 군대를 해산하는가 하면 산림과 광산 그리고 철도를 빼앗는등 한국의 식민지화를 강력하게 추진하면
서 또 하나의 단계적 조치로 소위 ‘차관정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또한 일제는 항일계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1907년 7월 27일 신문법(新聞法)을 공포하여 언론, 출판의 검열을 강화하고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하였다.

안중근은 고종황제가 퇴위되고 군대가 강제해산 당하자 동지들과 함께 그에 대한 방책을 협의하였다. 안중근은 이 때 항일계몽운동의 적극적인 방략으로 의병을 일으켜서 독립전쟁을 준비하자는 '독립전쟁전략'을 주장했으며 그 전략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골자로 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요지의 안중근의 독립전쟁전략은 1907년 당시 상황으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였다. 왜냐하면 당시 국내의 의병운동은 현대식 병기의 절대적부족과 의병들의 군사훈련 부족으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안중근은 국내에서의 항일 계몽운동을 중단하고 국내에서의 전략에 대한 한계점을 느끼고 의병부태를 창설하기 위해 러시아 땅 블라디보스톡을 향하여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되는데 이 때 안 의사의 나이 29세였다.


안중근의사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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