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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여순지역은 아침부터 짙은 안개속에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간수 4명의 호송을 받으며 형장으로 끌려나온 안중근은 그 전날 고향에서 보내온 흰색 명주 한복으로 갈아입고 조용히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이윽고 감옥 소장이 사형 집행문을 낭독하고 최후의 유언을 물었으나 다른말은 없다고 하면서 "이토 처단은 동양평화를 위해 결행한 것이므로 앞으로 한일 두나라가 화합하여 동양평화에 이바지하기 바란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와 함께 동영평화 만세를 부르자고 제의하였으나, 그들은 이를 제지하고 교수형 집행을 강행하였다. 이때 안중근은 '동양평화만세'를 불렀다는 말도 전하나 자료상 확인하기 어렵다.

12분후인 오전 10시 15분경 검시의사가 운명을 확인하고 새로 만든 침관에 유해를 입관시켰다. 유해는 두 동생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인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중근의 유언대로 하얼빈 공원에 묻을 수 없었다.

일본정부는 안중근의 유해가 밖으로 나갔을 때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안중근의 유해는 아직도 여순감옥 죄수 묘지에 묻혀있어 그 정확한 위치를 모른채 고국으로 송환하지 못하고 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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