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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1896년 10월 그는 각종 천주교 관련 서적을 가지고 천주교 교리사 이종래(바오로)를 데리고 청계동으로 귀향하였다. 안태훈은 가지고 온 『천주교교리문답』과 『 12단』 등 120여권의 교리서적을 가족과 인근 친지들에게 나누어주고, “천주교야말로 참 종교요, 가르치는 교리야말로 우리가 믿을 참 진리이다” 라고 하면서 전교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불과 2개월 만에 청계동을 비롯한 인근 7개 마을에서 천주교 신앙운동이 일어났다.

안태훈은 동기형제를 매화동 본당 신부 빌렘(한국명 : 홍석구) 신부에게 보내어 이 사실을 보고하고 청계동에 공소 설치를 청원하였다. 홍신부는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사람을 파견해 개종운동의 실태를 확인한 후 공소 개설의 준비를 갖추고 각 마을의 천주교 신앙인에게 각기 신주들을 불태우게 하였다. 그후 홍신부는 90리 길인 청계동을 심방하여 신앙의 중심인물인 안태훈을 비롯해 그 가족 및 이웃 신앙인 33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1897년 1월 11~12일의 일이었다.

이때 안태훈의 아들 안중근도 도마(Thomas) 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았다. 이로부터 안중근 일가는 물론 청계동 주민 모두가 천주교에 입교해 산간의 이 마을에는 외교인으로는 단 한세대가 남아있을 뿐이었다. 천주교 입교 이후 안중근은 홍신부로부터 열심히 교리를 배우는 한편 불어도 익혀 누구 못지 않은 돈독한 신앙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청계동 본당신부의 복사로 활동하면서 홍신부를 수행해 황해도 여러 지방을 순회하며 전교활동에 헌신하였다.

그 무렵 안중근은 청계동에 사목 방문한 뮈텔 한국천주교 주교를 해주까지 수행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안중근은 입교 후로부터 1910년 3월 31세로 순국할 때까지 조금도 변함없이 시종일관 돈독한 신앙인으로 평신도 사도로 활동하였다.

안중근의 옥중 자서전 ‘안응칠역사’중에는 천주교 교리에 대한 전도 강연내용이 16쪽에 걸쳐 기술되어 있어 그같은 사실을 실증하고 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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