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안중근의 사상과 정신·자취 > 사상 > 애천,애족,애인사상

안중근이 이러한 실천적이고 과감한 의거의 결행은 '동양평화론'이라는 그의 독특한 사상과 그의 애천(愛天), 애족(愛族), 애인(愛人) 의 3애정신 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이다. 3애정신은 유교사상, 개화사상, 기독교사상으로 복합된 사상체계다.

특히 민족 항일운동에 몸바친 애국애족의 정신은 그가 죽음을 초개와 같이 생각하고 여러 번 생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긴 과정에서 싹텄던 것이다.

소년시절 서당친구들과 봄꽃놀이를 갔다가 천애절벽에서 꽃을 꺾으려다 실족, 떨어졌으나 나뭇가지를 붙들고 살아났으며
친구 6~7인과 노루사냥을 갔다가 구식 6연발총이 발사가 안 되어 조사해보니 총구멍에 탄환이 박혀 쇠꼬챙이로 이를 쑤셔 총알을 빼내는 순간 꽝 하고 터지면서 쇠꼬챙이가 오른손을 뚫고 하늘로 솟았는데 이 때의 놀라움은 꿈에서도 진땀을 흘렸다.
만인계장으로 채표회사 출표기계의 고장이 발단이 되어 군중들이 몽둥이와 돌을 던지면 달려들어 목숨이 위태로울 때 허봉(許鳳)이라는 의인(義人)에 의하여 탈출할 때이고
의병전쟁 중 참패하여 초근목피로 20일동안 연명해 가면서 연해주로 귀환할 때와
1908년 연해주에서 계몽활동 중 어느 산골짜기에서 6~7인의 일진회 회원을 만나 그들에 의하여 구타당하고 탈주한 경우 다.

이러한 생사의 고비를 넘기면서 그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청년으로서의 건전한 양식을 갖게 되었다. 이와 함께 안중근이 자라오면서 그가 갖게 된 애천(愛天), 애족(愛族), 애인(愛人) 정신은 동양평화사상에 귀착되어 자신의 삶을 일체화 시킨 그의 독특한 동양평화론을 제창하게 되었다고 본다.


안중근의사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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