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안중근의 사상과 정신·자취 > 평가 > 국외(중국,일본,러시아)



1895년 중ㆍ일전쟁에서 패한 중국은 <마관조약>을 통해 요동반도와 부속도서를 빼앗기고 전비 2억량을 배상하는 등 치욕스런 운명에 처해 있었다.

이때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자 중국인들은 모두 다 '중국인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한' 일대 쾌거를 이룩하였다고 하면서 안중근은 중국을 대신하여 원수를 갚아준,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영웅이라고 극찬하였다. 정계는 물론이고 재야인사들도 축시문을 발표하여 안중근 의사의 공적을 구가(謳歌)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우일보> <상해신보> 등 각종 신문잡지들도 안중근의 의거소식과 그의 약력을 크게 소개하였다.

중국의 국부 손문(孫文)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예송시를 지어 찬양하였다.


또한 중국 정치 지도자와 문인 학자들은 각별히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환호, 격찬하면서 한중 양국민의 공동 항일투쟁의 계기로 삼으려 하였다. 그들은 다투어 의열 송축 시문을 읊으며 의거의 전말과 역사적 의의를 논찬하였고, 중국의 원세개(袁世凱)도 다음과 같은 송축시를 지어 추모하였다








안중근 의사를 찬양하는 시편들 가운데서 양계초의 '추풍단등곡'과 장태염의 '조 이등박문'은 가히 절창의 쌍벽을 이루었다고 평가할만하다.

양계초는 '추풍단등곡'에서 안중근은 해와 달처럼 영원할 것이며 자기는 살아서 존경할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그의 무덤 옆에 나란히 묻혀 동무하여 주련다고 앙모의 마음을 극대화하였다.

장태염은 '조 이등박문'에서 풍자적인 수법으로 이토는 취사원이나 백정과 같은 인간이라고 비하하였다 그리고는 살아서 제아무리 세도를 부려도 결국 죽어서는 시체가 수레에서 썩고 말것이라고 하면서 미꾸라지들이 도랑을 떠나서도 주제넘게 왕 노릇을 하려 한다면 결국 그와 같은 운명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 했다.

안중근 의사의 애국정신은 중국 젊은이들의 항일투쟁 과정에서 큰 고무와 격려의 힘이 되였다. 특히 1919년 5. 4운동 후 중국 각지에서는 강연회, 연극 등을 통해 안 의사의 애국사상을 널리 선전하였고 주은래 (周恩來)총리와 그의 부인 등영초(鄧潁超) 여사도 학창시절에 무대에 등장하여 안중근 연극을 연출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국공(國共)양당의 정치견해의 대립에도 불구하고 안 의사에 대해서만은 다 같이 찬양하였으며, 1937년 국공합작이 실현되어 전국적인 민족항전이 시작된 후에도 중국전역에서 劇'안중근'이 여러차례 연출되어 중국의 젊은 이들을 크게 고무케 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된 초기에도 안중근 의사는 소학교 교과서에 동양의 애국영웅으로 수록되었고 1989년 10월에도 짱춘(長春)에서 안 의사 의거 80주년을 기념하는 한. 중. 일 3개국 학자들이 참석한 국제학술회의가 개최되어 국제교류의 계기가 마련되기도 하였다.

안중근 의사는 오늘도 중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익숙한 한국의 항일투사 또는 영웅이라고 칭송 한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안중근 의사 의거 및 순국 100주년이 되었지만 안중근이 그토록 바라던 동양의 진정한 평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더구나 중국에서 안중근은 공동의 원수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의사로 예우받지만 그의 '동양평화론'사상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앞으로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사상의 본뜻을 재조명하여 현대적 의미를 부여하고 선양하는 사업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1909년 10월 26일, 일본사회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충격과 놀라움에 휩싸였다. 소위 일본 근대국가를 설계한 위인으로 추앙받던 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만주 하얼빈에서 총살당했기 때문이다. 이토를 비롯한 수명의 수행원도 중경상을 당했다는 사실과 현장에서 붙잡힌 범인이 조선인 청년으로 판명된 것은 일본인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과 경성일보 등 각종 언론매체는 "흉보(凶報)'라는 타이틀로 일제히 속보를 내 보내면서 사건의 정황을 자세히 보도했다. 머나먼 이역 땅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인에 의해 '객사'당했다는 사실은 조선을 둘러싼 동아시아의 정세를 급전시킨 미증유의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사살된 후 최고의 국가공로자로 추서되었고 내각의 주청에 따라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다. '메이지의 원훈(元勳)'에 걸맞은 대우였다.

일본은 안중근이 독립운동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만큼, 그에 대해 다양한 영역에 걸친 조사가 이루어졌다. 안중근 의사의 집안 내력, 천주교의 수용과정과 민권의식, 계몽운동과 의병투쟁, 그리고 의거에 대한 국제적 여론을 파악하기도 하였다.


귀일 후 그는 미야기현의 다이린사에 안중근 위패를 모시고 1934년 사망할 때까지 명복을 빌었다. 지금도 다이린사 앞에는 안의사의 위 휘호를 새긴 추모비가 서 있고 매년 추도식도 열린다.

뤼순감옥 소장이었던 구리하라 사다기치는 히라이치 고등법원장과 마나베 재판장 등에게 선처를 탄원했으나 무산됐다.

구리하라 소장은 안의사 사후 사직하고 고향 히로시마로 돌아와 의학 관련일에 종사하며 1941년 사망할 때까지 공무직에 나가지 않았다.

하급검찰관이었던 야스오카 세이시로도 '국가안위노심초사'라는 휘호를 받는데, 후일 며느리에게 "안중근은 깊은 교양의 소유자"라는 증언을 남겨 며느리가 '초대 총리대신을 죽인 암살자를 그렇게 평가해도 될까'라고 깜짝 놀랐다고 전한다.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이었던 박은식은 전기 '안중근'에서 "일인들도 그 의를 흠모하여 그 필적을 구하려는 자가 많았다"라고 쓰고 있다.
최근에 와서는 일본내에서 안중근 의사에 대한 숭모사업과 연구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종교계 및 학계에서도 안중근 의사 평화사상을 연구하는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또한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찾아 참배하는 외국인의 80%가 일본인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토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인식은 냉정하다. 그것은 피해의 역사를 가진 우리로서는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이제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계기로 일본은 우리나라와 함께 21세기 태평양시대를 열어가는 우방이 되었다. 한.일 양국은 심리적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성숙한 역사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황제 니꼴라이 2세는 그때 마침 기차로 독일을 방문 중 열차 안에서 뜻밖의 이토 사망 전문을 받고 바로 동경으로 다음과 같은 조전을 보내 위로하며 '모든 책임을 코코프체프 재무장관이 맡아 무례한 행위를 수습할 것이라고 했으며, 러시아 주재 일본 대사 모또노에게' 저명한 정치가 이토 공은 러ㆍ일양국간 평화와 상호존중을 실현시키려고 하려다 야수적인 음모로 서거했다'고 전했다.

또 코코프체프는 일본대사에게 본인은 '방금 고인이 된 이토 공과 우호적인 대화를 막 시작하였는데 이 비통함을 말로서 표현 할 수 없다며 일본 황실청에 깊은 애도를 전해 달라'는 전문을 각각 보냈다. 러시아내의 사회여론은 이토가 러ㆍ일간에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우호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왔는데 불상사로 앞으로 러ㆍ일 관계가 염려스럽다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으로 아무리 독립운동이라 할지라도 남의 나라에서 온 귀빈을 테러 행위로 살해했다는 비난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러ㆍ일 전쟁으로 적대감이 남아 있던 군부는 총사령부로 보낸 보고서에서 '일본은 한인이 이토의 은혜를 저버리고 배은망덕 한 행위라고 비난하고 고종이 일본에 와서 사죄해야 하며 이토의 피살에 따론 상응한 보상을 대한제국에서 꼭 받아내야 한다'고 했으나 '한인들은 일본이 대한제국의 독립보장을 구실로 보호통치를 마치 대한제국 황제의 뜻이며 백성의 희망인양 신문을 동원하여 허위 선전했다'고 흥분 했다.

러시아가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토는 친 러시아적 인물이며 하얼빈 여행이 러ㆍ일간 친선 수립이 목적이었으며 이토의 피격이 재무장관 면전에서 행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제국 입장에서 보면 안중근 의사의 이토 사살은 단순한 살인 행위가 아니며 일본의 약소국 침탈과 고종황제의 퇴위를 보복한 정당한 행위로 보아야 옳다'고 주장하며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강력히 옹호하는 세력도 있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숭모회 | 개인정보보호정책 | 이용약관 | 무단이메일수집거부 | 질문과 답변회원탈퇴
사업자등록증 : 104-82-04468 / 통신판매업 : 중구 제 54호 / 대표 : 안응모 / 개인정보보호정책관리자 : 김성규 
(우) 04636 서울특별시 중구 소월로 91(남대문로5가 471-2번지) / 문의 : 02) 771-4195,4196 / 팩스 : 02) 753-5033
Copyright(c)2007-2015 사단법인 안중근의사숭모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