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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일 후 그는 미야기현의 다이린사에 안중근 위패를 모시고 1934년 사망할 때까지 명복을 빌었다. 지금도 다이린사 앞에는 안의사의 위 휘호를 새긴 추모비가 서 있고 매년 추도식도 열린다.

뤼순감옥 소장이었던 구리하라 사다기치는 히라이치 고등법원장과 마나베 재판장 등에게 선처를 탄원했으나 무산됐다.

구리하라 소장은 안의사 사후 사직하고 고향 히로시마로 돌아와 의학 관련일에 종사하며 1941년 사망할 때까지 공무직에 나가지 않았다.

하급검찰관이었던 야스오카 세이시로도 '국가안위노심초사'라는 휘호를 받는데, 후일 며느리에게 "안중근은 깊은 교양의 소유자"라는 증언을 남겨 며느리가 '초대 총리대신을 죽인 암살자를 그렇게 평가해도 될까'라고 깜짝 놀랐다고 전한다.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이었던 박은식은 전기 '안중근'에서 "일인들도 그 의를 흠모하여 그 필적을 구하려는 자가 많았다"라고 쓰고 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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