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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을 그린 연극 [나는 너다]
관리자 2010-09-0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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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 100주년, 이제는 제대로 알아야 할 영웅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 여섯 발의 총성이 울린 지 벌써 100년이 흘렀다. 지난 2010년 3월 26일은 안중근이 차디찬 뤼순 감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다. 그의 의거와 서거 100주년을 맞이해, 그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에 비해, 우리가 안중근에 대해 아는 것은 너무나 단편적인 사실 뿐이다. 안중근은 단순히 이토 히로부미를 쏘아죽인 항일 운동가가 아니라, 대한제국의 의병중장이었고 동아시아 평화공존을 주창했던 사상가였다. 재판과 수감 기간 동안 그가 언행과 저술을 통해 남긴 깊고 심오한 사상 역시 의거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안중근이 단순히 시류적인 이슈가 아니라 진정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기 위해서는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제대로 알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안중근의 삶과 거사의 의미,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들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안중근을 박제된 영웅의 이미지가 아니라 또렷하고 구체적인 인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 
"영웅의 아들도 영웅이어야 하는가”


어느 시대에나 영웅은 위업을 남기고 장렬하게 죽는다. 업적은 시간이 흐를수록 장엄하게 빛나고 후인들이 품는 존경심은 갈수록 깊어진다. 그러나 그 영웅의 위업 때문에 굴욕과 고통 속에서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던 누군가의 슬픔과 번민은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다. 당대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했던 인물을 불의롭다고 꾸짖으며 사살한 안중근장군의 아들로, 그들이 통치하는 시대를 살아야했던 삼십육년간은 아들 안준생에게 얼마나 잔인한 형극의 세월이었던가 아버지의 얼굴도 보지 못했던 소년은 세 살 때 부친을 잃고 상해 임시정부가 남경으로 망명한 뒤로는 누구의 돌봄도 받지 못한 채 일인들의 손에 떨어져서 갖은 학대를 받으며 정치선전의 도구로 이용당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호부견자(虎父犬子)...... 훌륭한 아버지의 비열한 아들로만 기억되는 안준생의 고통을 통해서 안중근장군의 영웅담을 다시 보려한다. 영웅이기 이전에 ‘사람’이었던 안중근과 ‘사람’이기 이전에 ‘매국노’가 되어버린 아들 안준생의 엇갈리는 간극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물어보고자 한다.


인간 안중근, 그의 심연을 들여다봤다" [머니위크...
연극 '대한국인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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