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조선통감을 살해한 죄목으로 안중근(1879~1910) 의사에게 사형이 선고됐을 때, 그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뤼순 형무소의 아들에게 명주 수의와 함께 편지를 보냈다.
“네가 만일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한국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공소를 한다면 그것은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국가를 위하여 일하다 그리 되었으니 죽는 것이 영광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읽는 이들의 가슴에 비장한 전율과 절규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어머니로서 자식에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깨끗한 죽음을 요구하는 것은 정말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나라를 걱정하는 헌신적 정신과 태도가 바로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 안중근 의사의 모친 조마리아 여사. © 예술의전당 전시사업부 제공
청일전쟁(1894년) 이후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차관이 계속 늘어나면서 1907년 초에는 1300만원에 이르면서 국가경제를 위협하게 되자 전국적으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됐다. 황해도 자산가 안태훈의 아내였던 조마리아 여사는 안중근과 함께 이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조마리아 여사는 자신이 결혼 때 가져온 패물은 물론 며느리들의 패물도 나라를 구하는 일에 출연케 했다.
조마리아 여사의 리더십은 1906년 남편 사망 이후 집안의 어른으로서 구심점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발휘됐다.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신천군 청계동에서 살았던 그는 당시 개화운동이 활발했던 삼화항으로 이주해 장남 안중근을 위시해 정근, 공근 세 아들이 애국계몽교육운동을 하는 데 뒷바라지했고, 한편으론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는 일에 여성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조마리아 여사가 안중근 의사에게 심어준 모성 리더십은 한마디로 ‘사사로운 정에 매이지 말고 대의를 위해 뜻을 펼치라’는 것이었다. 일본이 고종황제를 폐위한 데 이어 순종을 옹립하고 군대해산령을 내리면서 대혼란에 빠졌을 때 안중근은 나라를 구하겠다는 뜻을 품고 국외로 망명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해외로 떠나는 것이 어머니와 가족을 돌보지 못하는 불효라 생각해 사죄하자 조마리아 여사는 “집일은 생각지 말고 최후까지 남자답게 싸우라”는 간단한 훈계로 격려했다.
그는 아들이 감옥에 갇혔어도 떳떳한 마음을 끝까지 간직하도록 애썼다. 두 동생을 뤼순으로 보내, 죽음 앞에 두려움 없이 천주교 신자로 세상 떠나기를 권했다.
어머니의 전언을 들은 안중근은 “맹세코 신도의 자격과 신자의 도리에 추태를 보이지 않고 최후를 이룰 터이니 어머니께서는 안심하소서”라고 답사했다 한다.
▲ 백범 김구 선생의 가족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큰아들 인, 김구 선생, 부인 최준례씨, 모친 곽낙원 여사. © 백범김구기념관 제공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의 주역인 독립운동가 김구(1876~1949)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는 늦게까지 매를 든 엄격한 어머니였다. 곽낙원 여사는 14세 때 24세의 노총각 김순영과 혼인했다. 가난한 세 집안이 혼기에 이른 자녀를 서로 교환해 맺어주는 세다리 혼인을 통해서였다. 본인도 가난 때문에 글을 배우지 못했는데 남편은 안동 김씨 가문이긴 하나 반역죄로 멸문의 벌을 받은 김자점의 후손이어서 평민으로 숨어 지내느라 학문을 쌓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절망 속에서 그는 외아들 김구가 총명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자 아이에게 희망을 걸었다. 아들을 서당에 보내 공부시키기 위해 삯품과 길쌈 등 온갖 궂은일을 해가며 학비를 벌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아들이 혹여 자신의 바람과 다른 길로 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엄격했다. 수신(修身)을 강조한 것도 그런 까닭이었던 것 같다.
곽 여사는 김구가 동학농민군에서 지도자로 활약하자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또 그 영향으로 반일의식도 형성됐다. 1896년 6월 김구는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에서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는다’며 일본 육군 중위 스치다(土田壤亮)를 살해해 체포됐다. 김구가 인천으로 이감되자 곽낙원 여사는 “나는 네가 경기감사를 한 것보다 더 기쁘다”고 해 아들에게 힘을 더해줬다.
옥바라지를 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온 그는 아들에게 하루 세끼 더운 밥을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개성상인 박영문의 집에서 고용살이를 했다. 곽 여사는 ‘사랑의 매’를 아들 나이 58세에야 접었다. 윤봉길의 의거로 피신 중인 아들과 1934년 중국 자싱에서 만난 곽 여사는 “군관학교를 운영하며 많은 청년들을 거느린다고 하니 이제부터는 잘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말로 꾸짖고 회초리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그는 가정에서 희생적인 역할만 한 것이 아니고 권위 있는 가장의 역할도 했다.
아들 김구가 상하이로 떠난 다음 곽 여사도 상하이로 옮겨가 며느리 최준례가 병사하자 그곳에서 손자들을 키웠다. 당시 임시정부 가족들의 삶이라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지만 그는 어려움을 참고 독립운동을 펼치던 임시정부 여러 사람들의 정신적인 기둥이었다.
임시정부가 난징에 있을 때, 곽 여사는 자신의 생일상을 차리지 못하게 하고 그 비용으로 단총을 사서 “이것으로 왜놈을 죽이라”며 청년들에게 주었는가 하면, 총 대신 붓으로 일본과 싸우라며 만년필 50자루를 사서 나눠주는 등 독립의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청년들의 사기를 북돋워 주었다. 자신의 생활을 철저하게 관리하면서 경우가 밝았던 곽낙원 여사는 가난하고 힘든 삶 속에서도 의로운 기개를 잃지 않아 임시정부 가족들의 공경의 대상이었다.
▲ 매헌 윤봉길 의사의 부친 윤황(왼쪽)씨와 모친 김원상 여사. ©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제공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왕의 생일인 천정절 및 상하이 전승기념행사 무대에 폭탄을 던져 상하이 파견군 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와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 등을 즉사하게 하고 일본 제3함대사령관 노무라, 제9사단장 우에다, 주중 일본공사 시게마쓰 등에게 중상을 입히고 순국한 윤봉길(1908~1932) 의사의 어머니 김원상 여사는 한글과 한학을 배워 당시 농촌 아낙으로는 상당한 학식과 교양을 지닌 여성이었다.
교육열이 대단해 유아시절부터 위인들의 이야기를 가르쳤고 6세엔 큰아버지가 운영하는 서당에 보내 천자문을 배우게 했다.
3·1운동 직후 보통학교 2학년이었던 윤봉길은 마을 장터에서 만세를 외치던 어른들이 일본군경의 탄압에 피 흘리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일제 하수인 되라는 학교에 나가지 않겠다”며 자퇴를 선언했다. 평소 조국의 소중함을 강조했던 김 여사는 어린 아들을 대견해하며 흔쾌히 허락했다. 언젠가 윤봉길의 의거 이후 가족들을 감시하며 모욕을 주던 일본 순사가 “망할 놈의 집안 같으니. 아들을 흉악범으로 기르니 좋소?”라며 조롱하자 “우리 봉길이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며 “이런 식으로 우리 가족을 괴롭히려거든 차라리 날 죽여라”며 악을 써 돌려보낸 일도 있을 정도로 꼿꼿한 여장부였다.
김마리아 모친 김몽은
“여자도 공부 많이 하면 남자와 다름없이 훌륭한 인물 될 수 있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조직 등 독립운동가와 여성운동가로 활약했던 김마리아(1982~1944) 선생의 어머니 김몽은 여사는 특히 딸만 셋을 둔 어머니로서 딸들에게 신교육을 받게 해 아들 못지않게 키우려는 의지가 대단했다. 김마리아의 민족의식과 여성해방의식 형성엔 친가와 외가가 모두 부유했고 일찍부터 기독교와 개화문명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마리아가 3세 때 남편이 병사하자 김몽은 여사는 딸들의 교육을 위해 시가에서 독립, 아랫마을로 이사했다. 김 여사는 그 시대 부인들을 앞서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여자도 공부를 많이 하면 남자와 다름없이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미 위의 두 딸을 서울로 보내 신식교육을 받게 했던 김몽은 여사는 1905년 복막염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남달리 총명하고 의젓한 막내딸 마리아를 위해 시댁 가족들에게 유언을 했다. “세 자매 가운데 위로 둘은 못하더라도 막내 마리아는 기필코 외국까지 유학을 시켜달라”는 것이었다.
장례를 마친 뒤 김마리아는 숙부 김윤오, 김필순과 고모 김필례 등이 활동하고 언니들이 공부하는 서울로 옮겨 이화학당을 거쳐 정신여학교에 진학했다. 이어 1915년 정신여학교 루이스 교장의 추천을 받아 도쿄여자학원으로 유학을 떠난다. 일본 유학생활 중 독립선언에 참여하고 귀국해서도 독립운동을 했던 김마리아는 체포와 출옥을 거듭하다 미국으로 망명했다. 다시 뉴욕 신학교 종교교육학과에 입학하는 등 33세였던 1924년 9월부터 국내에서 형기가 만료되어 1932년 7월 귀국하기까지 그는 미국에서 동포사회에 독립정신을 전파하는 일과 함께 학업에 매진했다.
교육이 여성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어머니의 믿음대로 김마리아는 실력을 쌓는 것이 곧 독립운동이라는 확신 아래 자신을 연마했고 이를 다른 여성들에게 전파하는 삶을 살았던 여성운동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