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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이 조화 이룬 동방의 작은 파리 북방교역 교두보 한국엔 ‘기회의 땅’
주간조선 전재 2010/12/20 2403

격동의 동북아 근현대사 공유 역사적 흔적 곳곳에
석유 생산 중국 1위 개발바람에 도시 전체가 공사장
▲ ‘얼음의 도시’ 하얼빈의 트레이드마크인 ‘빙설대세계’ 겨울축제.photo 신화통신
한반도의 2배이자 한국의 5배. 중국 동북지역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은 왼쪽에는 다싱안링(大興安嶺), 오른쪽에는 샤오싱안링(小興安嶺)산맥이 병풍처럼 버티고 있으며 옥수수, 수수, 쌀, 콩, 감자 수확량이 연산 약 5000만t에 이르는 동북 최대의 곡창지대 동북평원을 가슴에 품고 있다.
   
   헤이룽장성의 성도 하얼빈(哈爾濱)은 이제껏 성벽을 쌓아본 적이 없는 대평야 지대로 도시 이름은 만주어로 ‘명예’ 또는 ‘명성’, 고대 여진어로 ‘그물 말리는 곳’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하얼빈은 구석기·신석기시대에 인류가 활동했던 유적과 기록을 간직하고 있다. 만주족이 세운 금(金)나라와 청(淸)나라의 발상지기도 하다. 쑹화강(松花江)에서 물고기를 잡아 생활하고 그물을 깁고 말리던 한적한 강변 마을은 20세기 초(1903년) 러시아가 중국동청철도(약칭 중동철도)를 부설하며 국제도시로 탈바꿈했다.
   
   네이멍구(內蒙古) 만저우리(滿洲里)에서 하얼빈을 거쳐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인근의 국경도시 수이펀허(綏芬河)까지 연결되는 중동철도는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지선(支線)이다. 만주횡단철도로도 불린다. 중동철도의 개통으로 하얼빈은 시베리아와 블라디보스토크, 멀게는 유럽까지 철도로 연결됐다. 이로 인해 30여개국 16만명이 넘는 외국인도 유입됐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오늘날 하얼빈은 인구 50만이 넘는 큰 도시로 번성해 동북아 지역에서 가장 부유하고 국제적 성격을 가진 도시로 비약적 발전을 하게 됐다.
   
   외부 사람들은 하얼빈을 일컬어 ‘동방의 작은 파리’ ‘동방의 작은 모스크바’라 부른다. 중동철도를 통해 들어온 서방문화와 기존의 동방문화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하며, 현재의 하얼빈 시내 곳곳과 중앙대가(中央大街)를 관통하는 약 1.4㎞ 거리의 양쪽에서 풍겨나오는 바로크와 르네상스풍의 건축물이 주는 느낌 때문이다. 특히 중앙대가에 인접해 있는 러시아 정교회 ‘성소피아 성당’은 중동철도가 부설되고 러시아인들이 대거 이주한 후 세워진 정교회 성당으로 하얼빈에 있는 러시아 건축물 중에서도 대표적 상징물이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하얼빈은 일본 대륙 침략의 전초기지였다. 또 소련군이 1년간 점령하였고 다시 1년 뒤 중국 공산당이 하얼빈을 탈환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됐다. 때문에 하얼빈은 국적을 넘나드는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고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4개국이 가해자 또는 피해자로서 격동의 동북아 근현대사를 공유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민족 영웅의 활동무대
   
   우리에게 하얼빈은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가 지금으로부터 101년 전인 1909년 10월 26일, 일본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했던 독립 투쟁의 현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얼빈역 플랫폼에는 안 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지점이 바닥에 삼각형으로 표시돼 있다.
   
   안 의사가 자주 찾았던 자오린(兆麟)공원, 최초 의거를 계획했던 지홍차오(霽虹橋)와 차이쟈쥐(蔡家溝)역도 묵묵히 역사의 현장을 지키고 있다. 저격 후 취조를 받았던 일본 총영사관 건물은 현재 중국인 소학교로 개조돼 사용 중이다.
   
   안중근 의사가 그토록 열망했던 조국은 독립이 되고 주권을 되찾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유해조차 수습하지 못한 못난 후손이다. 거기다 세월이 흐를수록 안 의사의 고귀한 애국사상이 퇴색되고 잊혀져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당시 공판법정에 참여했던 영국기자 찰스 모리모가 보도한 기사 중 ‘이 세계적인 판결에서 승리자는 안중근이며 그는 영웅의 월계관을 쓰고 자랑스럽게 법정을 떠났다. 그의 입을 통해 이토 히로부미는 한낱 파렴치한 독재자로 전락했다’는 내용처럼 안 의사는 우리 가슴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진정한 영웅으로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얼빈 하면 빠질 수 없는 ‘731부대’ 이야기도 있다. 731부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하얼빈에 주둔시켰던 세균전 부대로 일본제국주의 잔혹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하얼빈의 남쪽 외곽인 핑팡구(平房區)에 자리하고 있으며 1936년 일본이 만주를 침공했을 때 세균전 비밀연구소로 시작된 것이다. 당시 방역급수부대로 위장하였다가 1941년에 731부대로 명칭을 바꾸었다.
   
   731부대 사령관은 세균학 박사이자 군인이었던 이시이 시로(石井四郞) 중장. 부대 내부에는 바이러스, 곤충, 동상, 페스트, 콜레라 등 생물학 무기를 연구하는 17개 연구반이 있었고 각각의 연구반에선 이른바 ‘마루타’로 불리는 인간에게 생체 실험을 했다. 일제는 1936년부터 1945년 여름까지 전쟁 포로와 기타 구속된 사람 4000여명의 한국인, 중국인, 러시아인, 몽골인 등을 대상으로 각종 세균실험과 약물실험을 자행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731부대는 만행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살아있는 150여명의 마루타를 모두 처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곳은 전시관으로 개조되어 당시 일본군의 반인도적 만행을 보여주는 장소로 탈바꿈했다. 1층에는 생체실험 후 버려진 시체와 가족들의 울부짖음이 밀랍인형으로 전시돼 당시의 비참한 상황이 소름을 돋게 하고 깊은 충격을 주고 있으며, 2층은 세균배양과 실내·외에서 행해졌던 생체실험 과정을 적나라하게 재연하고 있다. 현재까지 공개된 마루타들의 인적 현황은 벽면 대리석에 기록돼 있다. 일제의 잔혹함과 전쟁의 참상 등 힘 없는 국가의 아픈 역사가 깊이 스며있는 곳이다.
   
   
   겨울동화 같은 하얼빈 얼음축제
   
시베리아 쪽에서 강풍이 불어오면 본격적인 하얼빈의 겨울이 시작된다. 겨울이 되면 혹독한 영하의 날씨가 6개월(10월 중순~이듬해 4월 중순) 동안 지속되며 연중 0℃ 이하인 날만도 190일이나 된다. 연중 평균 기온이 6℃에 불과한 하얼빈의 추위로 말할 것 같으면 영하 44℃까지 내려가는 진기록을 세운 적도 있다. 때문에 하얼빈의 아파트나 일반 건물의 외벽은 남방에 비해 최소 30~50㎝ 더 두껍다. 대형 백화점이나 상점, 기타 공공건물의 출입구도 이중 유리 출입문으로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출입문 밖에 추가로 두꺼운 면 가림막을 설치해 혹독한 외부 기후에 대응하기도 한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콧수염엔 고드름이 달리고, 과일가게는 과일을 상자 속에 넣어두고 두꺼운 이불로 덮어 보온상태를 유지한다. 가판 위에는 꽝꽝 언 ‘견본품’ 과일이 달랑 1개 올려져 있을 뿐이다.
   
   빙성(氷城)에 걸맞은 한 편의 겨울동화도 이때부터 시작된다. 11월 하순에서 12월초 하얼빈을 지나는 쑹화강이 1.5~2m두께로 얼어붙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하얼빈의 상징이자 겨울축제인 ‘빙설대세계(氷雪大世界)’가 시작된다. 하얼빈 겨울축제는 올해로 제26회째를 맞았으며 하얼빈 시내 외 전지역에서 진행된다.
   
   얼음과 5색 등이 결합된 얼음조각전시, 얼음수영, 스키 등 각종 겨울스포츠가 총 결집돼 하얼빈은 거대한 축제장으로 변한다. 하얼빈 겨울축제는 캐나다 퀘백 윈터카니발, 일본 삿포로의 눈축제와 함께 세계 3대 겨울축제로 손꼽히며 3곳 중 규모가 제일 크다. 춥고 열악한 기후와 환경을 오히려 즐거운 축제와 국민 단합행사로 변화시키고 상업화한 지혜는 우리가 귀감으로 삼아 본받고 배워야할 것이다.
   
   
   라일락 향기 짙은 미녀들의 도시
   
   하얼빈의 시화(市花)는 ‘띵샹화(丁香花·라일락)’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쑹화강 일대 스탈린공원을 비롯한 시내 공원 곳곳에 심어져 있는 수천 수만 그루의 라일락이 장관을 이룬다. 이때 라일락이 뿜어대는 향기에 전 시가지도 진동한다.
   
   하얼빈엔 늘씬한 미녀들이 많다. 다롄, 칭다오, 항저우, 충칭과 더불어 중국에서 미녀들이 가장 많은 도시 중 한곳으로 꼽힌다. 19세기 말 중동철도를 타고 들어온 수많은 러시아인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자연스럽게 이곳의 북방 중국인들과 혼혈이 된 까닭이다.
   
   ‘북방의 한 나라에 아름다운 미녀가 있어 그녀가 한 번 미소 지으니 성이 흔들리고 그녀가 두 번 웃으니 나라가 흔들린다. 나라가 망하는 일은 원치 않는 일이나 아름다운 미녀는 일생에 한번 얻기 힘드나니’.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영화 ‘연인’에 등장하는 대사다. 영화에서처럼 한 나라의 미녀는 성(省)과 나라를 흔들 정도로 막강한 경국지색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북방인들의 기질은 관료적이고, 권위적이며, 사고가 경직된 편이다. 때문에 깊이 사귀기와 일처리가 힘들지만 한번 진정한 친구가 되면 좀처럼 변하지 않고 큰힘이 되어주는 경우가 많다. 반면 동북인들은 산둥(山東)인들과 닮아 기골이 장대하고 정치인이나 군인 출신이 많으며 풍류와 멋을 아는 호연지기가 있다.
   
   
   아시아나·만도기계·CJ식품 등 진출
   
   하얼빈의 인구는 476만명(교외까지 합산하면 987만명)이며 면적은 70.86㎢로 중국 내에서 도시 면적 단위로는 가장 큰 규모다. 2009년 하얼빈의 GDP는 3258억위안(약 55조원)으로 2005년에 비해 2배나 증가했다. 연평균 성장률은 13.5%로 중국의 평균성장률(약 8%)을 훨씬 웃돈다.
   
   하얼빈의 주력 산업은 3차 산업으로 주로 러시아와의 교류와 합작이 활성화돼있다. 2009년 대 러시아 교역량이 36억달러(약 4조원)로 그중 수입이 21억달러, 수출이 15억 달러이다. 주요 특산품 및 농산품으로는 인삼, 녹용, 모피, 버섯 등이 있고 광산자원으로는 석유, 석탄, 금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다칭(大慶)석유는 중국 총 생산량의 39%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설탕과 석탄 생산량은 4위, 천연가스 2위, 목재 생산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얼빈은 2009년부터 시작된 1차 지하철 공사와 대규모 아파트 재개발 공사, 골목 정비사업, 도시미화사업으로 거대한 공사장을 방불케 한다. 하얼빈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 동포들은 3만6000명 정도이며 헤이룽장성 내 거주인원은 약 16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곳에 장기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은 유학생 1800명을 포함하여 약 4000명 정도이며 주요기업은 아시아나항공, 국민은행, 하나은행, 만도기계, CJ식품, 광성발전기 등이 본사 진출 전에 북방교역의 교두보로서 활동하고 있다. 기타 중소기업으로는 약 120여개 업체가 영세하게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북과 북방지역은 사전에 철저하게 연구하고 계획하고 준비한다면 아직은 우리에게 기회의 땅이다. 중국 동북지역과 러시아를 포함한 북방지역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관심 또한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투자를 하기 전 동북과 북방지역이 가지고 있는 열악한 환경과 조건을 쉽게 생각해선 안된다. 하얼빈은 혹독한 기후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통일 한국 이후 러시아, 몽골, 유럽 등을 대상으로 하는 북방교역의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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