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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토끼띠 인물...안중근.김유신.김삿갓 등
아시아 투데이 전재 2011/01/11 2959

토끼, 영특하고 날렵함의 대명사

[아시아투데이=홍성율 기자] 우리나라에서 토끼는 오랫동안 민족문화의 한 주인공이었다.
고분벽화·풍속·동요·동시·설화·판소리 등에서 토끼는 귀엽고 순박하며 영특하고 날렵한 동물로 묘사됐다.

   
우리 조상은 달에 불로장생의 선약을 찧는 토끼가 천년을 산다고 믿었다. 5세기 후반 고구려 고분에서는 토끼 벽화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 토끼가 처음 등장한 것도 고구려 6대 대조왕 때이다. 부여국의 사신이 꼬리가 긴 토끼를 바쳤고 고구려왕은 이를 상서로운 짐승이라며 사면령을 내렸다는 내용이 삼국사기에 기록됐다.

이후 다양한 민화에서 떡방아를 찧는 옥토끼로 변화했는데 토끼 두 마리가 함께 방아를 찧는 모습으로 흔히 등장해 부부 사이의 금실을 상징하기 시작했다.

토끼의 상징성이나 암시성은 문학작품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됐다. 우리나라의 민화와 속담 등에서 토끼는 강자를 꾀로 물리치는 영특한 존재로 등장한다.

토끼가 거북을 타고 용궁에 갔다가 지혜롭게 빠져나오는 별주부전 이야기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설화다. 이 작품은 역사 속에서 항상 약자였던 대중들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토끼는 지혜롭지만 힘없고 나약한 동물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과거 우리 조상은 힘없는 대중을 문학적으로 표현할 때 토끼로 형상화했다.
이 관행은 교훈이나 풍자를 담은 속담에도 그대로 스며들었다. 대중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속담은 그 시대의 문화적·사회적 관념도 담겨 있다.

대중의 저항의식과 삶의 지혜가 토끼와 관련된 속담에 응축된 것도 이 때문이다. 속담에 표현된 토끼를 살펴봤다.

토끼 관련 긍정적인 속담으로는 △토끼는 굴을 셋 판다 △토끼가 용궁을 가도 살길은 있다 등으로 지략의 명수로 표현된 것들이다.

그러나 토끼에 관련된 속담은 부정적인 게 더 많다. 생명 유지를 위해 항상 주위를 경계하는 토끼의 행동이 경망스럽게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놀란 토끼 벼랑 바위 쳐다보듯 △사자 없는 산에 토끼가 왕 노릇 한다 등은 나약하고 교만함을 나타낸 것이다.

보잘것없는 존재로서의 토끼는 △토끼 꼬리만 하다 △호랑이 잡으려다 토끼를 잡는다 등이 있다.
성급한 토끼의 특성을 비유한 속담으로는 △눈먼 토끼 뛰듯 한다 △성질 급한 토끼가 먼저 죽는다 등이 있다.

이밖에 △교활한 토끼는 굴이 셋이다 △토끼가 용궁을 가도 살길은 있다 △놀란 토끼 뛰듯 한다 △사자 없는 산에서는 토끼가 선생 노릇 한다 △토끼가 제 방귀에 놀란다 등의 속담이 있다.

토끼와 관련된 옛 풍습은 정월 첫 번째 토끼날인 상묘일이 대표적인데 조선 헌종대의 동국세시기에는 이날 새로 뽑은 실을 토실이라고 했다. 이 실을 주머니 끝에 달아매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처럼 토끼가 문화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것은 외모, 생태와 깊은 관련이 있다.
다른 동물을 공격할 수단이 전혀 없는 토끼는 눈이 밝고 귀가 커 귀여운 생김새와 놀란듯한 표정으로 연약함의 대명사였다.

유일한 방어수단은 큰 귀로 작은 소리까지 들어 외부의 적이 침입할 때 바닥을 울려 쫓아내는 것이다.

토끼는 순한 초식동물로 선을 대표했으며 날렵한 움직임은 영특함을 상징하기도 했다. 또 1년에 4~6회나 임신하는 토끼는 다산과 다복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토끼해에 태어난 역사적 인물로는 신라의 명장 김유신과 조선 시대 화가 장승업, 방랑시인 김삿갓, 의사 안중근, 한용운, 지석영 등이 있다.

역사적인 사건도 많아 백제의 건국, 경복궁 근정전 완성, 신라 불국사 완공, 문익점이 목화씨를 처음 들여온 시기는 모두 토끼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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