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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신문에 보도된 안중근 의거 기사 자료집
세계일보 전재 2011/02/21 2980

‘중국신문에 보도된 안중근 의거 기사 자료집’ 발간<세계일보>

의거 101주년 맞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700쪽 총서 펴내

◇안중근 의사가 러시아재판소에서 재판받기를 기원한다는 기사와 안중근 의사의 삽화가 실린 민우일보 보도내용(1909.11.15).
독립기념관(관장 김주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안중근 의사 의거 101주년 기념으로 중국에서 간행되었던 중국 신문에서 안중근 의거 관련 기사를 발췌하여 ‘중국신문 안중근 의거 기사집’(700쪽)을 한국독립운동사 자료총서 제27집으로 발간했다. 

이번 기사집에 수록된 중국의 17종의 신문과 1종의 잡지의 내용은 안중근 의사 및 의거, 의거에 대한 평가, 안의사 재판 및 형 집행 전후 상황, 각국의 반응 등을 보도하고 있다. 특히 안중근 의거에 대한 칭찬과 비난, 그리고 중립적인 논조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데, 당시의 복잡한 중국의 정세 속에서 신문을 발행한 주체가 추구한 정치이념이 달랐기 때문이다. 

‘암살’을 혁명의 주된 수단으로 여기는 혁명파가 간행한 신문인 ‘神州日報’·‘민우일보’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반면, 평화적이고 온건적인 개량주의를 지향하는 입헌파가 간행한 신문 ‘大公報’·‘時報’·‘申報’·‘時事報’·‘華字日報’ 등은 부정적이거나 중립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밖에 일본인이 중국에서 발간한 ‘順天時報’와 ‘盛京時報’는 이토 히로부미를 중심으로 보도했다.

1909년 10월 26일 한국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의거는 온 세계를 놀라게 했다. 특히 중국인에게는 커다란 충격과 동시에 항일의 기운을 고조시키는 사건이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한국과 중국 침략을 서둘러,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 대장대신과 협의하여 만주를 분할하기 위해 하얼빈에서 회담을 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결행된 안중근 의거는 열강의 침략과 압박 아래 온갖 고난을 겪은 중국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일본을 비롯한 구미의 신문 대부분이 이토 히로부미의 사망을 안타까워하며 그의 업적을 칭송하였지만, 안중근 의거는 ‘암살행동’으로 규정하고 비난하였다. 이와 달리 중국의 언론들은 안 의사의 거사일로부터 1910년 3월 26일 순국일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관련 보도를 내보냈다.

안중근 의거에 대한 중국인의 인식에 관한 기존의 연구는 주로 혁명파들의 긍정적인 반응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을 보였다. 혁명파와 정치적 입장이 달랐던 입헌파의 인식에 대해서는 소홀한 점이 없지 않아 중국인들의 다양한 인식을 반영하는 데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이번 발간한 자료집은 안중근 의거에 대한 다양하고 방대한 자료를 수록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안중근 의거가 세계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041)560-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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