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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조동성교수 창조, 나눔 과목 개설 연극으로 강의
조선일보전재 2011/02/23 2372

매너리즘 빠진 경영학 강의 후배 교수들에 넘기고
학생들과 연극 만들면서 ‘창조’ 과목 수업
수강생들 작품 준비하며 세상 읽는 안목까지 넓혀

한 대학에서 33년간 가르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자괴심이 들었다. 그래서 지난 학기부터는 그동안 담당해오던 과목들을 후배 교수들에게 넘겼다. 대신 새 과목을 두 개 개설하면서 하나는 창조, 다른 하나는 나눔을 다루기로 했다. 창조를 다루는 과목은 기아자동차의 디자인담당 피터 쉬라이어 부사장과 공동으로 진행했다. 수강생 100명이 10명씩 10개 조로 나뉘어 기아자동차에서 파견된 디자이너들과 함께 자동차 관련 주제를 가지고 직접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다.

창조 과목은 학생들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 연극을 하기로 했다. 각 조에서 학생들이 직접 극본을 쓰고, 배경음악과 주인공의 아리아를 직접 작곡하고, 무대장치와 의상도 직접 준비하고, 기획·연출 그리고 직접 연기까지 모두 담당해서 10분짜리 연극을 준비했다. 주제는 내가 쓴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라는 가상 역사소설을 기본으로 하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세 가지 갈등구조를 각 조가 하나씩 다루기로 했다. 우리의 영웅 안중근 장군과 일본인의 영웅 이토 히로부미의 대결,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 안중근과 일본 영사의 위협에 굴복해 공개 사죄한 안 장군 아들 안준생의 부자(父子) 대립, 그리고 일제의 사형 언도에 대해 당당하게 죽음을 맞으라고 안 장군을 격려한 모친 조마리아 여사와 독립운동진영의 기대와 달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일본과 타협한 부인 김아려 여사의 갈등구조다.

학생들은 처음엔 시큰둥했다. 디자인과 관련 없는 연극을 왜 해야 하는지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연극 준비를 하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평생 한 번도 연극을 보지 않았다는 어떤 학생은 대본을 외우면서 연극 안으로 자신의 삶이 녹아 들어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이토 히로부미, 김아려, 안준생 등 소설에서 조연 역할을 한 사람들을 중심인물로 삼아 극본을 쓴 팀에서는 주연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수업을 마치면서 서울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진행한 학생들의 공연은 뜨거웠다. 전문가의 손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거친 부분도 있었지만 학생들의 사전 준비와 현장에서의 열기는 그런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도 남았다. 연극이 끝난 후 학생들은 강의에서보다 훨씬 많은 배움과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일러스트=오어진 기자 polpm@chosun.com

하지만 정작 학생보다 더 많이 배우고 깨달은 사람은 나였다. 그동안 나는 노자에 나오는 "사람에게 물고기를 주는 것은 그에게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만 못하니라(授人以魚, 不如授人以漁)"는 말씀의 신봉자였다. 그러나 이번 학생들의 연극 공연을 계기로 "사람에게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굶겨서 바닷가로 보내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생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연극에 필요한 것들을 여기저기서 수집하고 습득해서 창조, 즉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나눔 과목에서는 수강생들에게 자기소개용 3분짜리 영화를 UCC로 만들어오라고 했다. 그런데 수강생 14명 중 8명이 밴드 반에서 활동한 모습을 담았다. 수강생 중 과반수가 밴드 반에 참여했다는 것이 신기해서 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학생들은 병원이나 고아원, 양로원 등을 찾아가 밴드공연을 하면서 그들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생기고 이런 느낌이 나눔이란 과목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밴드 반에서 연습할 때는 악보를 따라가기 이전에 먼저 동료들의 악기 소리를 주의해서 들어야 자신이 악기 소리를 낼 때 조화로운 음색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생겨나 나눔이란 과목을 수강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두 과목을 학생들과 함께 진행하면서 정말로 수확이 컸다. 첫째는 창조와 나눔이 별개의 주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특히 음악을 비롯한 예술활동은 창조와 나눔이라는 결실을 동시에 이뤄낼 수 있는 공통분모였다. 둘째는 예술 중에서도 연극이나 밴드 반처럼 여러 명이 함께 어울려 진행하는 단체활동에서 창조와 나눔에 대한 깨침이 빠를 것이라는 점이었다. 셋째는 창조이건 나눔이건 실천이 없는 이론은 공허하고 진정한 배움과 깨침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방식의 강의 두 과목을 한 학기 동안 진행하고 나니 피로감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고 창조와 나눔이라는 두 개념에 접근하는 진지한 방법을 찾아낸 것 같아 흡족한 마음도 든다. 올해는 나도 평소 관심 있었던 드럼을 연습해서 젊은이들의 밴드에서 조역이라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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