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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륙을 깨운 총소리(下)
경향신문 2004/12/30 3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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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입수한 관련 사료에 따르면 당시 중국 언론은 일제히 안의사의 의거를 높이 평가했다. 안의사의 총성이 한반도는 물론 만주를 독차지하려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중국은 저격사건 이후 안의사를 민족 영웅에 버금가는 반열에 올려놓는가 하면 관련 연구와 각종 기념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져왔다. 하얼빈의 학자들은 “안중근 의사 추모 열기가 정작 한국보다 더 뜨겁고 다양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항일 민족영웅 안중근=이토 저격이 일어나자 러시아와 일부 서유럽 국가들이 일본의 영향력을 감안해 공식적인 찬양이나 평가를 삼간 채 사실보도에만 주력했다. 그러나 중국 언론은 안의사의 애국 행위를 찬양하고 이토의 침략 야심을 폭로하는 데 앞장섰다. 

조선족으로 대표적인 안중근 연구자인 서명훈(徐明勳) 전 하얼빈 민족종교사무국 부국장은 “안의사가 하얼빈에서 거사하고 뤼순에서 순국한 인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청(淸)왕조를 무너뜨리기 위한 혁명 전야라는 시대적 상황도 큰 몫을 했다”고 풀이했다. 

안의사의 의거는 1911년 청왕조를 타도한 신해혁명(辛亥革命) 참가자들에게 큰 용기를 불러일으켰다는 설명이다. 자신의 몸을 던져 구국 의지를 표현한 모범 사례가 된 셈이다. 혁명파 신문인 상하이의 민우일보는 이토 저격에 대해 연속 5편의 사설과 19편의 기사를 실었다. 톈진의 대공보를 비롯해 베이징, 광저우, 충칭, 선양 등의 신문이 앞다퉈 사설과 관련 기사를 상세히 보도했다. 

중국으로 피신해 있던 한국 학자와 중국의 개혁운동가들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14년 박은식(朴殷植)이 전기 ‘안중근’을 펴냈고 중국의 석학인 량치차오(梁啓超), 장빙린(章炳麟) 등은 제문과 비문 등을 만들어 그를 추모했다. 상하이에서 활동한 혁명파 장타이옌(章太炎)은 ‘안중근은 조선의 안중근, 아시아의 안중근도 아니요, 세계의 안중근’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중국의 대표적 문인 파진(巴金)도 ‘안중근은 나의 젊은 날의 영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9년 제국주의 반대를 표방한 5·4운동이 일어난 이후 안의사는 애국주의의 상징으로 부상했다. 국민당, 공산당은 당파를 초월해 안의사를 중국의 민족 영웅에 버금가는 반열에 오르게 했다. 수많은 학생들이 안의사를 소재로 한 연극을 공연했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와 부인 덩잉차오(鄧穎超)도 톈진의 난카이(南開)학교 재학시절 안중근 연극에 출연했다. 저우언라이는 “중국과 한국이 손잡고 함께 벌인 항일 투쟁은 바로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저격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49년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이후 안의사에 대한 관심은 더욱 뜨거워졌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안의사 의거가 실리기까지 했다. 문화혁명 등으로 주춤했던 안의사 추모 열기는 78년 개혁개방 이후 다시 일어났다. 의거 80주년을 맞은 89년에는 대대적인 행사가 벌어졌다. 지린성 사회과학원 주최로 안중근 국제학술세미나가 창춘에서 처음 열렸다. 하얼빈에서는 해마다 순국일인 3월26일과 의거일인 10월26일이 되면 의거에 대한 좌담회, 공연 등이 열리고 있다. 92년에는 왕훙빈(王洪彬) 당시 하얼빈시 문화국장이 ‘창작 뮤지컬 안중근’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이밖에 헤이룽장성 혁명박물관은 안의사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평화주의자 안중근=과거에는 안의사를 단순한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 시각이 강했으나 지금은 동양의 평화를 부르짖은 사상가로 접근, 새로운 평가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 하얼빈 학자들의 설명이다. 김우종 전 헤이룽장성 당사연구소장은 “안중근 의사는 이토 한사람을 죽인다고 일제의 야욕이 사라질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며 “그는 이토를 죽여서 일본과 모든 아시아 인민들에게 동양의 평화가 중요하고, 그러려면 일제의 무분별한 야욕이 사라져야 한다고 외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스치(吳時起) 하얼빈공대 인문학부 교수는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사상과 애국사상을 살펴보면 그가 단순한 테러리스트가 아니며 동양평화를 염원했던 진정한 평화주의자임을 잘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중근 추모 열기는 훗날 일본에까지 이어져 추모모임이 만들어지고 여러 종류의 전기가 출간된 바 있다. 안의사는 오늘날까지도 패권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한 동아시아에 평화의 등불이 되고 있다. 

〈하얼빈/홍인표특파원 iphong@kyunghyang.com〉 

3. 안의사 보훈사업의 현주소
1. 대륙을 깨운 총소리(上)
      


안중근의사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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