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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안의사 보훈사업의 현주소
경향신문 2004/12/30 2774
내가 이등박문을 죽인 것은 그가 있으면 동양의 평화를 어지럽게 하고 한·일 양국을 격리시키므로 한국의 의병 중장 자격으로 주살한 것이다. …… 이번 거사는 나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한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 한 것이다. …… 이번 거사도 한국의 독립전쟁이므로 나는 의병의 참모중장으로 한국을 위해 한 것이지 보통의 암살을 저지른 것이 아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후 옥중에서 한 진술의 일부다. 안의사는 자신의 거사를 단순 암살로 몰고 가려는 일제의 기도에 대하여 대한제국 의병 중장으로서 행한 독립전쟁이자 동양평화를 위한 정당한 투쟁임을 밝혔다. 

안의사의 거사는 민족사·동양사적으로 지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정작 안의사에 대한 연구성과는 초라하기만 하다. 안의사는 ‘민족의 영웅’이자 ‘구국의 횃불’로 추앙받아 왔지만 안의사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이해는 아직 위인전 수준을 맴돌고 있다. 

안의사 추모행사는 매년 안의사 순국일인 3월26일과 의거기념일인 10월26일 등 두차례 열린다. 이밖에 안의사 숭모회와 여순기념재단 등 여러 단체가 부정기적으로 국제 학술회의 등을 열고 관련 사료집을 발간하고 있다. 1995년 ‘광복 50주년 동양평화론 발표회’와 2001년 ‘안중근 의거 92주년 한·러 국제학술회의’ 등이 대표적 예다. 또 2001년에는 안의사의 의거를 상징하는 단지동맹터 표지석이 설치됐다. 

그러나 안의사에 대한 학문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미비해 안의사 선양사업도 ‘풍요속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0여년간 안의사를 연구해온 장석흥 국민대 교수는 “안의사는 이토 저격에 앞서 수년동안 계몽운동, 의병운동을 벌인 전방위 독립운동가였지만 제대로 된 학계의 안중근 연구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고 말한다. 또 조광 고려대 교수는 “안의사 연구가 본격화된 것은 1980년대 이후”라며 “아직 사료조차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고 안타까워 했다. 

황종렬 안의사 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가톨릭 계통에서 그를 신앙인으로 내세우면서 연구하는 쪽과 민족사학계에서 민족운동가로서 조망하는 두가지 흐름이 있다”면서 “그러나 안의사의 위대함에 비해 학문적 성과는 초라하다”고 말했다. 

안중근 연구의 태두로 알려진 최서면 명지대 석좌교수의 지적은 보다 신랄하고 구체적이다. “누구나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에 대해서는 안다. 그러나 그 (자른) 손가락은 어디에 있는가” “안의사의 얼굴은 하나지만 하얼빈에서 거사일인 10월16일 찍은 것과 다음날인 17일 찍은 사진이 틀리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최교수는 “일본이 한반도를 40여년동안 지배하는 동안 안의사에 대해 널리 알려야 할 좋은 자료들이 모두 숨겨졌다”면서 “안의사 관련 자료는 오히려 일본과 러시아에 많다”고 말했다. 최교수는 특히 국내 연구가 부족해 일본인들의 역사 날조가 수시로 이뤄지고 있다고 통박했다. 그는 “최근 일본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제3자가 쏜 총에 사망했다는 내용의 책이 두권이나 나왔다”면서 “1980년대에도 유사한 책이 나왔으나 거족적 항의로 판매가 중단된 적이 있는데 이제는 그것을 읽은 사람도, 반박하는 이도 없다”고 개탄했다. 그는 “일본에서 헛소리하는 책이 나오더라도 한국에서 유권해석을 할 만큼 충분한 연구가 이뤄져야 잘못도 바로잡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결국 안의사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보훈사업은 안의사에 대한 심층적 연구로 뒷받침될 때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박성진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5. 안중근의 동양평화 사상
2. 대륙을 깨운 총소리(下)
      


안중근의사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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