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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중근의 위대한 여정―얀치허에서 뤼순까지 ⑵] 세계를 뒤흔든 한 발의 총성
국민일보 2004/12/30 3844

 

막 출구를 빠져나오는 사람들,호객 행위를 하는 택시기사,북적이는 하얼빈 역. 불과 100여 년 전에 철도를 따라 건설된 도시의 아침 풍경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인간이란 끝없이 투쟁하며 문명을 만들어낸다는 명제를 새삼 되새기게 된다.

지난 15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한 기차가 먼 대륙의 평원을 18시간이나 달려 도착한 새벽녘 하얼빈 역. 무거운 짐 가방을 들고 플랫폼에 발을 디디는 순간,네 발 조금 뒤 세 발의 총성,그리고 ‘코레아 우라!’라는 고함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면 거기 대한의군 참모중장 겸 특파독립대장으로 독립전쟁을 수행 중인 31세의 대한국인 안응칠(안중근)이 서 있다. 연추 하리 외딴 시골에 왼손 무명지를 두고 온 사내. 그는 의외로 침착하다.

얼른 철길을 건너 안중근이 던져버린 1900년 식 브라우닝 권총을 집어 든다. 주위에는 안중근이 쏜 총알의 탄피 일곱 개가 흩어져 있다. 서둘러 열어본 탄창에 남은 한 발의 총알. 이 총알의 얘기를 듣기 위해 연추 하리에서 하얼빈까지 기나긴 여행을 한 셈이다. 탄두에는 십자가 그어져 있다. 

ㆍ여러가지 의문이 솟구친다. 안중근은 그 한 발의 총알로 자살을 할 생각이었나. 탄두의 십자는 그가 가톨릭 신자라는 걸 말해주는가. 그리고 7연발 반자동 브라우닝 권총이 남긴 일곱 개의 탄피와 마지막 한 발. 그것은 미스터리일까,역사의 교훈일까.

브라우닝은 오전 7시 하얼빈에 도착한 안중근의 가슴 주머니 속에 들어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탄 특별열차가 도착하던 오전 9시까지 안중근은 가장 효과적인 저격 지점,오직 그 한 가지만에만 골몰했다. 

특별열차가 도착하자,하얼빈에서 이토와 회담하기로 한 러시아 재무장관 코코프체프가 귀빈칸으로 올라가 이토를 영접한다. 코끝으로 스치는 영하 5도의 바람. 조슈 하급 무사 출신의 이토는 밀려드는 바람에 북국의 풍토를 체감했으리라. 그에게 코코프체프는 의장대 사열을 부탁한다. 마침 이토 도착 하루 전 가와카미 하얼빈총영사가 러시아 군경에 일본인 환영객을 검색하지 말 것을 요청했으니 결과적으로 가와카미는 안중근이 브라우닝을 들고 플랫폼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이토가 기차에서 내리자,악대가 군악을 연주한다. 환영 음악과 함께 이토는 차례로 러시아 악대,러시아 군대,청나라 군대,외교사절단의 순서로 사열한다. 그 순간 귀빈 대합실 한 구석에서 차를 마시던 안중근은 플랫폼으로 뛰쳐나온다. 공적을 향해 울리는 환영 함성이 그의 심장을 불타게 했다. 러시아 헌병대의 뒷부분에 도달한 순간,이토 일행이 다시 돌아섰다. 2열로 받들어총을 하고 있던 러시아 군인들,그 뒤로 보이는 백발의 이토. 안중근은 선두의 노인을 향해 네 발을 발사한 뒤 침착하게 주위 일본인들을 향해 다시 세 발을 쏜다.

이토의 몸에 박힌 총알은 현장을 이렇게 증언한다. 안중근은 이토의 정면이 아니라 옆에서 오른쪽 팔꿈치 위쪽을 겨냥해서 쏘았다. 이렇게 쏴야만 심장을 타격할 수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이토는 모두 세 발의 총알을 맞았는데,모두 오른쪽 팔을 지나 폐와 복부에 박혔다. 총알이 폐부를 관통하지 않은 까닭은 안중근이 사용한 총알이 탄두에 덤덤탄이었기 때문이다. 인도 공업도시 덤덤의 무기공장에서 만들었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덤덤탄은 표적을 맞추기가 쉽지 않지만,일단 명중하면 관통하지 않고 인체에 박혀서 탄체 내의 납을 분출한다. 비인도적이라는 이유로 1907년 만국평화회의에서 사용을 금지시킨 탄알이다. 고종의 밀서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묵살당했고 안중근은 만국평화회의의 금지품으로 이토의 심장을 겨냥했다.

안중근은 모두 일곱 발의 총알을 쏜 뒤,총을 버리고 ‘코레아 우라!’를 외치다가 러시아 헌병장교에게 붙잡혔다. 브라우닝은 7연발 권총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이 한 발의 의미는 무엇일까? 안중근은 팔꿈치 위쪽을 쏴야한다는 사실도,덤덤탐이 목표물을 즉사시킬 수 있다는 것도,러시아인 대신 일본인만 골라서 저격할 침착함도 가진 명사수였다. 

일본인 검찰관은 “자살하기 위해 한 발을 남겨둔 게 아니냐”고 다그쳤지만 안중근은 그 말을 부정했다. 재판 과정에서 시종 거사의 정당성을 설파했던 그가 자살을 꿈꿨을 리는 없다. 총알을 장전하던 안중근은 무슨 수가 있어도 이토를 죽이겠다고 결심했다. 그건 최대한 사격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7연발 권총에 최대한 장전하는 방법,그건 약실에 한 발을 넣어놓고 탄창에 일곱 발을 넣는 일이다. 네 발,세 발,그리고 나머지 한 발. 약실까지 가든 채운 여덟 발의 총알은 빈틈 없이 장전한 분노이거나,혹은 대륙을 떠돌던 망국의 한이었을 것이다.

일곱 발을 쏜 뒤 안중근은 멈췄다. 영웅은 남은 전쟁을 위해 한발을 아껴뒀다. 안중근이 가장 먼저 탄창에 집어넣었을 마지막 한 발은 그 전쟁이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 마지막 한 발은 수천 발의 총알이 될 것이며 안중근의 죽음은 수많은 안중근을 낳을 것이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의 정당성은 여기에 있다. 마지막 한 발은 결코 한 발이 아니었다. 안중근은 개인이 아니었다. 그건 독립전쟁을 수행하는 수천 발의 총알이었으며 안중근은 모든 독립운동가를 대표한 보통명사였다. 그리고 그 전쟁은 계속된다.

김연수(소설가)


2-1. 안의사 보훈사업의 현주소
1. [안중근의 위대한 여정 ⑴] 잊혀진 사람들을 위한 바람의 노래
      


안중근의사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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