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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안중근의 위대한 여정] ⑶ 운명의 선로…기차는 운명을 향해 마주달렸다.
국민일보 2004/12/30 5157

 

객실 승무원만이 오갈 뿐,불이 꺼진 침대칸은 조용하다. 기차는 앞으로만 나아간다. 반성하지도,회고하지도 않는다. 일본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안중근의 일화에는 이런 게 있다. 뤼순감옥으로 호송되기 위해 기차에 올랐을 때,일본 헌병이 “너 같은 자에게도 가족이 있을 게 아니냐?”며 물었다. 안중근은 “내게는 아내도,자식도 없다”고 대답했다. 대륙을 횡단하는 기차란 그런 것이다. 오직 앞을 향해 달려갈 뿐이다.

기차의 운명이란 어떤 것인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 철로를 따라온 기차는 우스리스크에서 철로를 바꿔 중국 쪽으로 향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 도시인 수이펀허에서 하얼빈 사이를 운행하는 중국 기차의 꽁무니에 붙는다. 그리고 다시 기차는 무단쟝을 거쳐 하얼빈에 이른다. 거기서 다롄에서 출발해 선양,창춘을 거쳐 온 또 다른 선로와 만나게 되면 기차의 운명은 비로소 완성된다.

이 선로를 부설한 러시아는 이를 동청철도라고 불렀다. 하얼빈에서 갈라지는 동청철로의 한 갈래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고,다른 갈래는 다롄에 이른다. 제정 러시아가 따뜻한 바다를 얼마나 갈구했는지 이 철길의 모양새를 보면 알 수 있다.

1909년 10월 21일,그 두 개의 항구 도시에서 각자 기차에 올라탄 두 사람이 있다. 목적지는 같았으나,여행 목적은 전혀 달랐다. 한 사람은 생의 마지막 야망을 대륙에서 실현하려고 했으며 다른 한 사람은 생을 소멸시키려고 했다. 몇 번의 우연을 거쳐 결국 그들은 10월 26일 아침,하얼빈에서 만나게 되지만 역사의 눈으로 볼 때 두 사람이 하얼빈에서 만나게 된 것은 필연적이다.

나라를 잃고 먹고 살 길을 찾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른 한인들은 아무르만이 보이는 남쪽 바닷가에 정착했다. 대부분은 미역을 따서 훈춘에 내다파는 어민들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세찬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움막집처럼 그들의 운명도 늘 흔들리고 있었다. 1909년 10월 19일,안중근은 연추 하리의 집을 떠나 배편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렀다. 개척리에 있던 한인신문사인 대동공보사에 들른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재무장관 코코프체프와 회동하기 위해 하얼빈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안중근이 자신의 운명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 깨닫게 된 순간이다. 이 때 안중근은 아내도,자식도 없이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만 달려가는 기차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역사는 안중근의 모든 것을 가져가버렸다. 연추 하리와 마찬가지로 블라디보스토크에도 그의 자취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비장한 마음으로 안중근이 오갔을 거리에는 경기장과 해산물시장이 들어서 있다. 이 곳 사람들에게 한국인 얘기를 물으면 얼마 전 공연차 다녀간 서태지 얘기를 들려줄 뿐이다. 안중근은 없다. 다만 바뀌지 않은 게 있다면 온몸을 날려버릴 듯 불어오는 바닷바람이다. 온몸이 뒤틀린 블라디보스토크의 나무들은 그 바람의 생김새를 잘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안중근의 결심을 통해 당시 개척리에서 힘들게 살아가던 한인들의 삶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풍경의 반대편에 뤼순 203고지가 있다. 다롄에 접한 천혜의 군항 뤼순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으로 러일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다. 일본군은 이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1만8000명의 목숨을 내놓았다. 블라디보스토크 개척리를 찾아가는 한국인 관광객은 드물지만,뤼순 203고지에는 일본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듯 장사치들은 곧잘 일본어로 말을 건다. 그런 점에서 개척리와 203고지는 대척지라고 할 수 있다.

안중근이 우덕순과 함께 하얼빈으로 가는 차표를 얻기 위해 개척리에서 동분서주하던 10월 20일,이토 히로부미는 이 203고지에 올라 “오랜만에 듣는 203고지/1만 8천 명의 뼈를 묻고 있는 산/오늘 올라보니 감개가 무량하다/하늘을 바라보니 산머리에 흰 구름이 둘러져 있네”라는 시를 남겼다.

침울한 분위기의 블라디보스토크와 달리 다롄은 활기가 넘친다. 고속 성장하는 중국의 현재 모습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모든 게 사라진 블라디보스토크와 달리 다롄에는 옛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다롄의 중심가인 중산광장이 서면 이토의 감개무량이 어떤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10월 19일 다롄에 도착한 이토는 환영객들 앞에서 “만주의 평화는 극동의 평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요지의 연설을 했다. 그 날,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안중근이 생각하던 평화와는 아주 달랐다. 안중근은 한국 중국 일본이 서로 협력하고 도와줄 때,극동에는 평화가 온다고 믿었다. 서로 상반된 그 두 개의 평화론은 결국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다시 기차 안,코 고는 소리,몸을 뒤척이는 소리, 한숨 소리 등만 간간히 들려올 뿐,객실 안은 쉬지 않고 선로를 달리는 기차 소리만 가득하다. 인기척에 문득 고개를 돌리니 한 사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자신에게는 아내도,자식도 없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사내. 조국을 위해서 왼손 무명지를 잘라낸 사내.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던 사내. 그런 사내가 가만히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대륙의 밤을 바라본다.

같은 시간,대륙의 저편에서는 어떤 운명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이토가 탄 특별열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두 개의 기차가 하나의 선로를 따라간다. 그들의 평화,그들의 조국,그들의 야망이 서로 마주보고 달리고 있다. 하얼빈에서 그 두 기차는 서로 만날 것이다. 그 운명의 순간을 향해 기차는 반성도,회고도,후회도 없이 끝없이 펼쳐진 광야 위를 계속 달려갈 뿐이다.

김연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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