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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안중근의 위대한 여정] ⑷ 장부가 세상에처함이여,그 뜻이 크도다
국민일보 2004/12/30 3447

 

하얼빈에 도착한 10월 22일 밤부터 이토를 저격한 10월 26일 아침까지 안중근은 수많은 우연과 맞닥뜨리게 된다. 10월 22일,세관을 통과하느라 쑤이펀허에서 기차가 정차하자,안중근과 우덕순은 유동하를 끌어들였다. 하얼빈에 도착한 안중근 일행은 마차를 타고 당시 하얼빈한인회 회장이던 김성백의 집으로 향했다. 김성백의 집은 도리구 삼림가에 있었다. 하얼빈 역과 쑹화강 부두가 있는 도리구는 수많은 골목들로 이뤄진 구역이다. 그 골목길의 모습은 지금도 그대로다. 하얼빈 역에서 삼림가까지는 마차로 15분 남짓 걸리는 거리다. 당시에는 가로에 불빛이 없었으니 안중근 일행은 먹빛처럼 짙은 어둠 속을 달려 김성백의 집에 도착했을 것이다.


당시 하얼빈의 인구는 4만 명. 그 중 한인의 수는 268명이었다. 이주 농민들이 정착한 만주의 다른 지역과 달리 하얼빈에는 일거리를 찾아 떠도는 노무자들이 많았다. 삼림가 김성백의 집은 그런 노무자들에게는 일거리도 구할 수 있고 숙식도 해결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다음날인 23일은,안중근 드라마 중 가장 평온한 날이었다. 안중근 일행은 김성백의 집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거리에 떨어진 하얼빈 공원으로 갔다. 지금 그 길로는 겨울을 대비해 하얼빈 시내의 난방수를 공급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하얼빈 공원은 중국 공산당 혁명가 이조린의 이름을 따 현재 조린공원으로 불린다.

안중근은 23일 딱 하루 이 하얼빈 공원에 갔을 뿐이다. 그런데 안중근은 한국이 독립될 때까지 자신의 뼈를 하얼빈 공원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 날,안중근은 하얼빈 공원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조린공원을 찾은 지난 10월 15일,북방의 가을은 이미 낙엽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낮이 짧아지기 시작해 벌써부터 한 뼘의 햇살도 아쉬웠다. 거기 어딘가에서 안중근은 따사로운 생의 한 때를 마지막으로 즐겼으리라. 안중근에게도 희로애락이 있었다. 연못을 비추고 되튀는 가을 볕처럼 머릿속을 오가는 수많은 감정들과 안중근은 작별하는 의식을 치렀다. 죽어서 하얼빈 공원에 묻히고 싶다는 그의 말은 역사가 그에게 부여한 임무를 완성한 뒤, 다시 희로애락이 있는 평범한 인간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이었으리라.

하얼빈 공원에서 인간으로서 마지막 햇살을 즐긴 안중근은 공원 앞 사진관에서 우덕순 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일은 민족의 원수 이토를 저격하는 일뿐이었다. 애당초 안중근은 창춘 부근 관성자에서 이토를 저격할 생각이었다. 러일전쟁의 결과로 관성자 이남의 동청철도가 일본의 손에 넘어간 까닭에 관성자 이남과 이북의 선로 폭이 서로 달랐다. 따라서 이토는 관성자에서 기차를 갈아타야만 했다. 하지만 여비를 구하지 못한 안중근 일행은 상하행선이 모두 정차하는 큰 정거장까지 가는 표를 끊었다. 그 표는 삼협하까지 가는 표였으나 중간에 차이자거우에서도 기차가 정차하는 것을 알게 된 안중근 일행은 거기서 하차했다.

차이자거우는 하얼빈에서 84㎞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주 작은 역이다. 막상 가보니 그 역이 너무나 작다는 사실에 당황하게 된다. 이토의 특별열차가 멈출 만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중국 노인이 있어 불러 세웠더니 마침 1956년부터 철도 노동자로 일했던 사람이라고 했다. 하얼빈으로 가는 기차가 이 작은 역에서 무조건 정차한다고 하는데,그게 사실이냐고 물었다. 그는 역 건물 맞은편의 너른 공터를 가리켰다. 증기기관차가 다니던 시절,그 공터에는 석탄이 잔뜩 쌓여 있었다고 했다. 차이자거우 역은 석탄을 공급하는 역이라 상하행선 기차가 반드시 멈췄다고 했다.

차이자거우 역은 그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안중근,우덕순,조도선 세 명은 24일 그 역에 도착해 역 건물 지하의 여관에 묵었다. 여관이 있던 자리는 지금 보일러실로 쓰이고 있다. 거기서 하룻밤을 보낸 뒤,안중근은 우덕순에게 두 번의 기회를 노리자고 했다. 자신은 하얼빈에서,우덕순은 차이자거우에서 각기 기다리고 있다가 기회가 닿는 대로 이토를 저격하자는 뜻이었다. 이 말에 우덕순도 동의했고 25일 안중근은 다시 하얼빈으로 돌아갔다. 그들의 눈물겨운 이별은 러시아 측 자료에 다음과 같이 남아 있다.

“친구들은 안중근과 작별을 고하였다. 그들의 작별은 감명을 주는 점이 있었으며,목격자들에게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안중근은 몇 번 공손한 인사로 답례했으며 이에 대해 그의 동반자들도 똑같이 답례했다. 그의 얼굴은 슬퍼보였고 눈에는 갑자기 눈물이 고였다. 안중근은 4번 열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떠났다.”

우덕순과 조도선은 그들을 수상하게 여긴 러시아 헌병들에 의해 여관방에 감금됐다가 거사가 일어난 직후 체포됐다. 차이자거우에 남아 있었다면,안중근도 마찬가지 신세였을 것이다. 하지만 안중근은 용케도 그 모든 실패의 확률을 피해서 10월 26일 9시 30분,하얼빈 역 플랫폼까지 무사히 들어가 얼굴도 모르는 이토를 즉사시킬 수 있었다. 역사에 우연이란 없다. 오직 필연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하얼빈 공원에서 돌아온 날 저녁,안중근이 지은 ‘장부가’의 한 구절은 그가 이미 그 역사의 법칙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영웅이 때를 지으리로다.” 영웅의 길에 우연은 없다.


5. [안중근의 위대한 여정―얀치허에서 뤼순까지] 위국헌신군인본분
3-1. .[안중근의 위대한 여정] 엉뚱한 곳의 斷指기념비…관리도 엉망
      


안중근의사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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