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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평화공동체 제시, 100년을 앞서간 안목 놀라워
조선일보 2008/03/13 3780

 

"빈 라덴 테러를 안중근 거사에 견주는 자들이 있어"

허동현 교수(오른쪽)와 김현철 박사가 안중근 의사의 거사와 그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안중근 의사 의거 100년·서거 100년' 대담 민족의 영웅인 동시에 脫민족주의 선구자 3國 공용화폐 발행·공동군대 창설등 주장 의병장으로 적 수뇌 처단..테러와는 달라 '의거' 폄하하는 지식사회 일부 시각 잘못

2008년은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안중근(安重根) 의사의 거사 99주년이 되는 해이자 그의 서거 98주년, 일제강점 98주년이 되는 해다. 안중근은 20세기 여명기에 한국의 명운을 위해 온몸을 던지고, 동아시아 평화의 신(新)질서를 구상한 선각자였다. 창간 88주년을 맞은 조선일보는 안중근 의사의 '거사 100주년'(2009년 10월 26일), '서거 100주년'(2010년 3월 26일)을 한두 해씩 앞두고 안중근기념관 및 동상 신축, 국제학술대회와 기념 마라톤대회 개최 등 4대 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쳐나가는 한편, 안중근을 주인공 삼아 그의 시대를 새롭게 조명하는 기획들을 선보인다. 거사의 현장 하얼빈과 안중근 의사가 서거한 뤼순 감옥의 현지 르포에 이어 전문가 대담을 마련했다. 허동현 경희대 교수(한국근대사)와 김현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한국외교사)이 거사의 시대적 배경과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동양 평화' 위해 거사 결심

▲김현철: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 결심은 을사늑약이 계기였다. 일본은 러·일전쟁이 끝나자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하고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을 강점하는 데 앞장섰고, 그를 제거하는 것이 동양 평화에 기여한다고 보았다. 안중근은 한국이 역사의 피해자로서 단순하게 일본에 저항한다는 것을 뛰어넘어 동아시아 미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을 국제사회에 제시하고자 했고, 이것이 의거로 나타났다.

▲허동현: 러·일전쟁 때까지 한국의 대다수 지식인들은 민족 개념보다는 인종 개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중근은 '인종'에서 '민족'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새로운 민족국가의 탄생을 꿈꾼 인물이다. 안중근은 또 한편으로 탈(脫)민족주의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동양평화를 이야기하고 인종을 뛰어넘을 것을 주장했다.

▲김현철: 안중근은 정미칠조약 체결 이후 간도에 진출해서 동포를 모아 무장한 뒤, 1908년 함경북도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일본군들을 사로잡는다. 그는 너희들도 똑같은 백성인데 이토 같은 정치가의 잘못으로 전쟁터에 나왔다고 하면서 석방한다. 그는 현실적인 인식을 하면서도 마치 예수의 사랑에 버금가는 이상주의의 모습을 보여줬다. 안중근의 이런 행동은 그가 천주교 신자였다는 점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허동현: 안중근은 1895년 천주교에 입교한다. 유교에서 천주교로 바뀌는 것은 문명의 변화를 뜻한다. 당대 최고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윤치호는 기독교에 입교하면서 유교와 결별했다. 하지만 백인종의 인종 탄압을 보면서 또한 갈등을 느꼈다. 안중근도 비슷한 갈등의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적의 수뇌를 표적으로… 테러와는 달라

▲허동현: 일부 일본 지식인들은 '맥아더가 일본인에게 암살됐다면 미국이 일본에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하면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이 같은 의미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맥아더는 일본에 평화를 돌려주는 데 기여했지만 이토는 그 반대였다. 또 감히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를 안중근의 거사에 견주려는 자들도 있다. 분명히 하자. 안중근은 의병장을 표방했고, 적의 수뇌부를 대상으로 했다. 일반 시민을 해치지 않았다.

▲김현철: 안중근의 국제정세 인식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그는 당대가 약육강식과 제국주의적 전쟁이 불가피한 시대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취할 수 있는 독립운동의 방법은 학교를 세우는 것 같은 실력 양성운동과 함께 무장 독립운동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자신의 거사를 만국공법(국제법)에 의해 적국과 교전을 치르는 것이라고 했고, 일본 법정에서 일본 법에 의해 재판을 받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했다.

▲허동현: 지식사회 일부에서는 안중근의 거사가 오히려 망국을 앞당기는 부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토는 한일 병합에 대해 온건론자였는데 그를 암살함으로써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은 당시에도 있었다. 일본 검찰관은 안중근에게 '시정(施政) 개선론'을 말했다. 일본의 도움으로 도로가 개통되고 병원 같은 위생시설이 설치되고 식산과 공업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안중근은 "이 같은 변화가 한국의 진보나 편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호히 말했다.

▲김현철: 안중근은 초기에 학교 양성 등 실력양성을 추진하다가 점차 해외에서 무력투쟁으로 선회했다. 무력행사가 일본의 태도를 바꾸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이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안중근은 교전시 국제법을 지키고 정당한 절차를 지키는 모습을 보인다는 태도를 취했다. 일본에서도 안중근의 그런 모습에 주목한다. 일본제국주의보다 더 큰 그릇을 보여준 것이다.

◆동아시아 공동체론과 민족담론 되새겨야

▲김현철: 안중근은 동아시아 질서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염두에 두었다. 그는 1910년 재판과정 중 고등법원 청취서에서 한·중·일 삼국이 동양 평화회의체를 구성하고 삼국이 뤼순에 은행을 설립하고 공용 화폐를 발행하며 삼국의 청년으로 구성된 공동 군대를 창설하는 등 한·중·일이 협력하는 공동체를 제시했다. 이 같은 인식에서 21세기 동아시아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허동현: 안중근의 거사와 '동양 평화론'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다. 과거 민족담론은 국민동원의 수사로 쓰이면서 대내적으로 안 좋은 방향으로 사용됐다. 이제는 민족이라는 갑옷을 벗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강자가 먼저 민족주의를 폐기하는 선순환 구조 내에서만 민족주의를 벗을 수 있다.

◆국내 역량을 통합하지 못한 아쉬움도

▲김현철: 안중근은 이토가 일왕을 속이고 있으며, 일왕과 일본 정부가 현실을 제대로 알면 일본의 태도가 바뀔 것이라고 기대했다. 일본 군국주의를 커다란 흐름 속에서 보지 못한 인식의 한계를 지적할 수 있다. 그는 또한 1894년 동학농민군과 당시 민씨 집권세력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는데, 이로 인해 일본에 저항할 때 국내 역량을 통합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허동현: 안중근은 민족의 코드로 읽으면 구국의 영웅이다. 1905년부터 시작된 민족형성의 시발점에서 안중근은 높이 평가된다. 그의 동양 평화론은 현재의 동아시아 공동체론에도 맞는 측면이 많다. 그는 민족을 단위로 하는 국사의 시작을 보여주는 대표적 위인이자, 민족을 넘어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상한 선구자로 자리매김된다. 그러나 안중근이 고민했던 민족은 차별성 배제를 핵심으로 하는 '시민 민족주의'는 아니었다.

■허동현 교수(48)

▲고려대 박사 ▲한국근대사 전공 ▲현 경희대 국제캠퍼스 학부대학장 ▲저서 '근대한일관계사 연구'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 '우리역사 최전선'(공저).

■김현철 박사(44)

▲서울대 박사 ▲한국외교사 전공 ▲현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논문 '개화파와 내셔널리즘' '개화기 한국인의 대외인식과 동양평화 구상' '청일전쟁 개전시기 일본의 대조선 정책의 명분과 실제' 등.





어록으로 본 安의사의 사상

안중근은 뤼순 옥중에서 자서전 '안응칠역사(安應七歷史)'와 자신의 사상을 집약한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미완성)'을 집필했다. 신문 기고문 '인심결합론(人心結合論)', 재판진술과 옥중서신에서도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안중근이 남긴 말을 바탕으로 그가 말하는 자신의 사상을 정리했다.

①한국의 운명: "우리 한국 민족이 이 도둑놈(이토)을 죽이지 않는다면 한국은 꼭 없어지고야 말 것이다. 스스로 강한 힘으로 국권을 회복해야만 건전한 독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②천주교 입교: "세계 문명국 박사·학사·신사들 중 천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 없다. 우리 대한의 모든 동포 형제·자매들은 천주님의 의자(義子)가 되어, 현세를 도덕시대로 만들어 태평을 누리다가 죽은 뒤에 천당에 올라가 무궁한 영복을 함께 누리기를 천만번 바란다."

③동아시아 평화: "뤼순을 한국·일본·청국이 공동으로 관리하고 세 나라에서 대표를 파견해 동양평화회의를 조직한다. 세 나라 청년들로 군단을 편성하고 2개국 이상의 언어를 배우게 하여 우방 또는 형제의 관념이 높아지도록 한다."

④이토 처단 이유: "(명성)황후 폐하를 시해한 일, 대한 황제 폐하를 위협하고 5조약을 맺은 일, 대한 황제 폐하를 폐위시킨 일, 한국이 일본의 속국이 되고 싶어하는 것처럼 거짓 선전한 일…."

⑤만국공법 준수: "우리마저 야만의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나는 한국 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조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 행한 것이니 만국공법에 의하여 처리하도록 하라."






[이한수 기자(정치학 박사)=진행·정리 hs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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