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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사형집행 명령문 원문 등 사료 최초 발굴
헤럴드경제3.22일자 2010/03/22 2872
‘안중근 의사의 사형집행 명령문’ 원본과 안의사가 순국한 여순감옥이 안의사를 중요인물로 다루어 ‘특별한 경계를 했던 상황’등을 기록한 정황보고서를 비롯해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기록이 다량으로 포함된 사료가 최초로 발굴됐다.



국가보훈처는 안중근 순국 100주년을 맞아 안 의사가 순국한 여순감옥을 관할하던 행정기관인 ‘관동도독부 정황보고 및 잡보’ 자료를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서 발굴했다고 22일 밝혔다.

여기에는 1906년부터 1922년까지의 상황이 기록돼 있는데, 안 의사에 대한 ‘사형집행 명령기록’과 사형집행전 사건의 중대함을 감안해 안의사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특별한 경계를 했던 상황’ 등이 기록되어 있다.



관동도독부 민정장관 대리 사또 토모구마가 고무라 쥬타로 외무대신 등에게 보고한 내용에는 “안중근 등 한국인 9명 모두 독거구금한 결과 구금감이 다소 협애해 다른 감방은 정원 이상을 구금했다” “사건의 중대함으로 엄중히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일거일동에 주의해 특히 야간에는 수시로 간수로 하여금 비밀정탐하게 하는 등 야간경계는 종래의 감독자 외 간수 6명을 배치하던 것을 8명으로 늘려 만일의 위험을 방지하는데 힘썼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밤낮으로 경계를 강화하고 법정 출두에 대비해 압송마차를 준비한 상황도 기록되어 있다.

사형집행 명령기록은 여순법원이 검찰관에 대해 안 의사의 사형집행을 명령한 것으로서 죄명(살인범), 형명(사형), 판결언도(1910년 2월 14일) 등이 명시되어 있다.



아울러 이 자료에는 3ㆍ1운동 이후 치열했던 독립운동 양상과 당시 일본측에서 탐지한 독립운동가의 활동사항, 첩보 등 기밀정보가 포함돼 있다.

특히 이 자료에 언급된 228분의 독립운동가중 89분은 최초로 확인됐다.

이 정황보고서에 등장하는 228명중 1회 등장하는 인물은 197명, 2회이상 등장하는 인물은 31명(99건)이다.

앞으로 국가보훈처에서는 이번에 발굴된 자료를 독립유공자 포상에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그 동안 국가보훈처에서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안 의사의 유해관련 자료가 존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관련 전문가의 협조를 얻어 자료 수집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번에 발굴된 자료는 이러한 과정에서 얻은 성과이며, 앞으로도 전문가로 구성된 발굴팀을 운영해 유해관련 자료를 확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나갈 계획이다.



김양 보훈처장은 “안의사 유해발굴을 위해서는 철저한 기록문화를 갖고 있는 일본의 특성을 미루어 보아 일본측이 결정적인 자료를 갖고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며 “무엇보다도 일본 정부의 협조가 필요한 사항으로, 경술국치 100주년이자 안 의사 순국 100주년인 올해 일본 측의 성의있는 자세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보훈처는 안 의사 순국100년을 맞아 오는 26일 정부주관으로 서울시청 앞에서 국민제전 형식의 중앙추념식을 갖고 광화문광장까지 평화대행진을 벌일 예정이다.


김대우 기자/dewkim@heraldm.com

▶1909년 10월~12월 정황(관동도독이 본국 외무대신에게 보고)
<구금 및 계호>
하얼빈에서의 살인사건으로 입감한 한국인 9명은 엄정 격리할 필요가 있으므로 모두 독거구금한 결과 구금감이 다소 협애하여 다른 감방은 정원 이상을 구금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나 별도 구금 방법에 대해 힘써 노력하고 있다.

한국인 구금에 대해서 피고사건의 중대함으로 인해 계호자의 선정 및 사건의 성질상 감방 내외를 엄중히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또 감옥서 내에 임시법정을 설치하였으므로, 그들을 수용할 구치감의 사무 및 계호간수와 임시법정에 따라붙일 계호자도 선정하여 단속 처우의 적실 및 법정 심문사항의 비밀을 확보하는데 힘쓰는 동시에, 이들의 일거일동에 주의하여 특히 야간에는 수시로 간수로 하여금 그 행동을 비밀 정탐하게 하는 등 야간경계는 종래의 감독자 외 간수 6명을 배치하던 것을 8명으로 증가하여 만일의 위험을 방지하는데 힘썼다.



▶1910년1월~3월 정황(관동도독이 본국 외무대신에게 보고)
<구금 및 계호>
특히 이래 구금중인 살인 피고인 안중근 외 수명은 피고사건의 중대함에 따라 제반 관계상 엄중한 단속이 필요하였다.

특히 2월 7일부터 동 14일까지 기간은 연일 법원에 출정하기 때문에 미리 위험을 우려하여 압송마차를 설비함으로써 연도의 왕복을 경계했으며, 법정 내에서 경호상의 단속도 실로 고심을 극하였다.

이에 덧붙여 사형 확정 후에는 더욱 경계를 엄히 할 필요가 있었으며, 야근간수를 증가시켜 감옥 안팎과 부속 관사 부근 일원을 날이 샐 때까지 순찰경비시켰다.

한편 야간에는 가능한 한 간수의 외출을 제한하여 비상시에 대비하게 하고, 특히 일반 간수를 독려하여 주야로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도록 했다.

다행히 본 사건이 종료되자 아무런 잘못이 없게 되었다.



▶1910년 1월~3월 정황(관동도독이 본국 외무대신에게 보고)
<사형집행명령 기록>
1910년 3월24일 관동도독부 지방법원 검찰관에 대하여 아래 자에 대한 사형집행을 명함
한국 평안도 진남포 무직 안응칠(안중근)
-죄명 살인범
-형명 사형
-판결언도 1910년 2월14일



2010.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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