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중근 의사의 외손녀 황은주(93) 여사가 지난 12월 12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 (사)안중근의사숭모회(이사장 김황식)는 안중근 의사의 손자녀 중 유일한 생존자였던 외손녀 황은주 여사(93)가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전했다.
- 황 여사 빈소는 중앙보훈병원 장례식장 3층 5호실, 발인은 17일이고 장지는 천주교용인공원묘원이며 조문은 유족이 미국에서 귀국하는 대로 이뤄질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장남 이명호를 비롯해 명수, 명철, 딸 혜경 씨가 있다.
□ 자녀와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던 황 여사는 고국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 2015년 국내로 돌아와 안중근의사숭모회의 도움으로 수원 국립보훈원에서 거주하다가 고령으로 인한 뇌경색으로 지난 2월 15일 동수원병원 집중치료실을 거쳐 올 봄부터 서울 보훈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다.
○ 안중근의 손녀로 태어난 황 여사의 일생은 말 그대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 일제는 안 의사의 딸과 사위라는 이유만으로 여사의 부모를 중국 쉬저우(徐州) 일본인 거주지역으로 이주시켜 감시했고, 본가에도 수시로 일본 순사를 기습적으로 파견하는 등 감시와 압박을 지속적으로 이어갔다. 이 때문에 여사는 부모와 생이별해 상하이에서 외할머니(안중근 의사의 부인 김아려 여사) 손에 자라야 했다.
- 1939년 외삼촌 안준생이 일제의 ‘박문사 화해극’에 동원된 뒤로는 “영웅”의 가족이라는 영광과 함께 “변절자”의 가족이라는 멍에도 뒤집어썼다.
- 여사의 생에 가장 비극적인 일은 광복 이후인 1945년 12월 3일 아버지 황일청이 우리 동포에게 암살을 당한 것이었다.
- 안중근 의사의 사위이기도 한 황일청은 신흥무관학교 1회 졸업생으로 임시정부 초대 군무부 참사를 지내는 등 독립운동에 가담하기도 하였으나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공원 의거 당시 상하이를 빠져나오지 못한 탓에 일제의 감시를 피하지 못했고, 광복 당시에는 중국 쉬저우에서 조선인 학병들을 가르치고 있었다고 한다.
- 안중근 의사의 딸인 어머니 안현생은 광복 후 한국전쟁을 겪으며 한때 전구(電球)장사를 하기도 했을 정도로 궁핍하게 살았다. 피난지인 대구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 전신)에서 불문과 교수를 지냈으며 57세 때인 1959년 서울 북아현동의 자택에서 고혈압으로 세상을 떴다.
○ 지난 2015년 미국에서 국내로 돌아온 황은주 여사는 매년 안중근 의사 순국 추모식과 의거 기념식에 참석해왔으며, 지난 2019년에는 광복절 맞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후손 초청 오찬에서 대표로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다.
- 당시 인터뷰에서 황 여사는 “마지막 가는 날에 내 땅에서, 내 나라에서 묻히기 위해서 한국에 왔다”며 “외할아버지 안중근 의사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지만, 상하이에서 외할머니(김아려 여사)의 보살핌 속에 자라면서 늘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외할아버지의 정신과 사상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 황 여사가 안중근 의사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하기 전인 2019년 10월 26일이 마지막이었다.
○ 숭모회는 안중근 의사의 외손녀 고 황은주 여사를 비롯해 지난 10월 23일 별세한 질부 박태정 여사 등 생활이 어려운 국내 거주 유가족의 생활비 일부를 지원해왔다.
- 또한 미국에 있는 자녀들을 대신해 지난 2015년 입국 시부터 황 여사가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수원 국립보훈원의 입소를 비롯해, 수시로 병의원 진료 동행 등 2021년 보훈요양병원 입원에 이르기까지 숭모회 직원들이 생활전반에 대한 요양보호를 진행해 왔다.
○ 올해는 안중근 의사가 한국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지 112주년을 맞은 해이다. 황 여사의 별세로 안중근 의사의 손자 항렬 유족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
- 안중근 의사의 손자녀 중 미국에서 심장전문의로 활동하던 손자 웅호 씨는 지난 2013년, 손녀 선호 씨는 2003년, 연호 씨는 2011년에, 외손인 황 여사의 동생 은실 씨는 2016년에 각각 별세했다.